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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9 [일본여행15]Raise your Vibration 이번 여행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 눈을 떴더니 체크아웃 시간이라 깜짝 놀라서 침대에서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잠깐 초능력이 생긴 건지 나갈 준비 하고 짐 싸는 데 5분 걸렸다. ‘킷챠우이’가 문 닫기 전에 아침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부랴부랴 달렸다. 조용한 가게에서 마감 준비를 하던 도이짱이 나의 간절한 표정을 읽고는 활짝 웃으며 두부 완자 아침 정식을 차려주었다. 오늘은 무려 비건식이다. 어제와 같은 주방 가까운 곳에 앉아서 이번에는 도이짱과 수다를 떨며 늦은 아침밥을 먹었다. 가게 이름이 특이해서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다. 일본에서는 커피를 파는 옛날식 다방을 ‘킷샤텐’이라고 부른다. 도이짱은 커피 말고 차를 내는 가게를 할 거라고 ‘샤’를 ‘차’로 바꾸는 말장난을 떠올렸다. ‘텐’(가게라는 뜻) 자..
20221208 [일본여행14]관심이라는 사랑의 행위 오노미치에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는 메시지에 고우는 배웅 대신 드라이브를 시켜 주겠다고 했다. 마침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같이 가자는 다정한 제안이었다. 어제 처음 만난 고우가 배웅을 고집하는 이유를 안다. 배웅과 마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위한 마음도 있지만 자신을 위한 이유가 훨씬 크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내 잃어버린 동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삶에 대한 태도나 성향이 닮았다. 어젯밤 라면 가게 마타타비에서 돈 없이 여행하는 고우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누구는 술을 누구는 밥을 사겠다고 서로 다투었다. 나는 지갑 속에서 5천엔 짜리 지폐를 꺼내 혹시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이 돈을 받아달라고 했다. 노래를 부르고 살아 보겠다고 한 걸음 내디뎠을 때 나는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의 대..
20221207 [일본여행13] 계획은 어긋나야 제맛 오노미치에서 예정된 2박이 끝나는 아침, 마음이 넘쳐서 술렁거린다. 타마짱과 고우가 배웅을 해 주고 싶다고 가기 전에 꼭 연락을 달라고 했다. 오노미치는 빈집 프로젝트로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작은 가게나 이벤트를 이어가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지만 굳이 리서치하러 온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다가오는 것들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숙소 yado의 1층 공유공간에서 스치듯 만난 누군가가 낡은 빈집을 고쳐 여러 가게가 들어가 있는 ‘세 집 아파트’를 만들었다며 들러보라고 했다. 7시 반부터 아침밥을 파는 ‘킷챠우이’라는 가게가 있다는 말에 꼭 가 보고 싶어졌다. 좁은 골목에 손으로 쓴 것 같은 작은 간판들이 가리키는 곳으로 들어가니 작은 마당에 할머니, 엄마, 아빠, 어린이, 강아지(귀..
20221206 [일본여행12] 오노미치의 마법 신나는 라이딩을 마치고 자전거를 반납하고 나니 갑자기 무릎이 욱신거리고 엉덩이가 아팠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은 화끈거리고 몸에서는 땀 냄새가 진동한다. 살아있다는 증거다. 숙소 앞 벤치에 멍한 얼굴로 숨을 고르고 있으니 위층에서 커피 로스팅하는 고소한 향기가 날아와 코에 닿았다. 아로마테라피를 받는 듯 몸이 이완된다. 로스팅을 마친 히로짱이 나를 발견하고 어서 오라는 인사를 한 뒤 커피 한 잔을 내려 준다. 천국이 따로 없다. 멈추지 않는 여행자의 행운에 조금 겁이 난다. 설마 내 남은 삶의 모든 운을 여기서 다 몰아 써 버리는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니야, 일단은 매 순간을 만끽하겠어! 지금 쑤시는 무릎에 닿는 햇살과 바람, 코와 입을 채우는 향긋한 커피, 전혀 알아듣지 못하던 언어가 어느새 귀에 닿아 ..
20221205 [일본여행11] 섬과 자전거 초록색 자전거를 빌렸다. 7개의 다리를 다 건널 생각은 없어서 전기자전거가 아닌 일반자전거를 5시간 이용하는 저렴한 코스를 선택했다. 지도를 받고 조금 복잡해 보이는 경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으니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슬금슬금… 바닥에 그려진 파란색 라인만 놓치지 않고 가면 된다고 했다. 자전거를 배에 싣고 10분이면 눈앞에 보이는 섬에 도착한다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었다. 오랜만에 타 본 자전거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대면서 코앞에 있는 항구까지 가는데 자전거 가게 아저씨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뒤통수에 느껴졌다. 아무튼, 출발이다. 자전거와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몇 년 전 타이베이에 놀러갔을 때 대만 친구 루루와 이바가 꼭 자전거를 타야 한다고 해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막..
20221202 [일본여행10] 도넛교 입문 산책을 좋아하지만 아침에는 잘 걷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낮 12시 이후부터 하는 게 좋다는 한의원 선생님의 지침을 핑계 삼아 아침형 인간이 되려는 생각을 버렸다. 하지만 여행은 다르다. 주어진 시간에 한계가 있으니 예외를 허용하는 수밖에. 일본에서 가장 작은 빵집은 여는 시간이 좀 늦어서 오노미치 상점가에 있는 맛있는 빵집에서 아침 요깃거리를 좀 샀다. 하나면 충분한데 배고플 때 음식을 고르면 늘 그렇듯 세 개나 골랐다. 숙소에서 녹차 한 잔을 우려 빵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남은 빵은 간식거리로 가방에 잘 넣어 두었다. 오늘의 계획은 자전거로 섬을 건너기. 자전거 대여점이 문을 열 때까지 어젯밤 걸었던 동네 산책을 하기로 했다. 육교와 바로 연결된 마을의 입구를 조금 지나면 절이 ..
20221201 [일본여행09] 혼자가 되지 않는 여행 오노미치에 도착한 날, 제주도로 이주한 친구가 석양을 매일 볼 수 있는 바닷가 마을에 살아서 행복하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저녁 초대를 받고 편의점에서 맥주라도 사서 가려고 바다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걸었다. 코발트색과 오렌지색의 그라데이션이 끝내주는 하늘과 바다가 산책 메이트였다. 에비스 캔맥주와 한국 김 맛(?) 감자칩을 골라서 타마짱의 퇴근을 기다렸다. 게스트하우스 yado는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기도 한가 보다. 누군가 갑자기 뛰어와 화장실을 빌려 쓰고 ‘공유 주방’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사무실 소파에 털썩 앉아서 타마짱에게 실연 소식을 전했다. 남자친구가 갑자기 이별을 고해서 이유를 끈질기게 물었더니 ‘손에 닿는 피부의 감촉이 맞지 않아서’라고 했단다. 다른 이유가 있는데..
20221130 [일본여행08] 인생 첫 신칸센 일찌감치 하카타역에 도착해 오벤토(도시락) 가게를 기웃거렸다. 일본에서는 기차에서 꼭 벤토를 먹어야만 할 것 이미지가 있다. 에키벤(역도시락)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고, 기차에서 도시락 먹는 이야기만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질 정도니까. 배가 별로 고프지 않기도 하고 고기가 대부분 들어가 있어서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그래도 첫 신칸센 경험인데 싶어 생선이 들어간 작은 사이즈의 벤토를 골라 기차를 탔다. 히로시마까지는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서 타서 도시락 까먹고 약간 멍때리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숙소와 기운이 잘 안 맞았던 모양인지 잠을 계속 설쳐서 처음으로 탄 기차에 별 감흥이 없다. 여행을 충분히 즐기려면 체력이 꼭 필요하다. (혹은 젊음이거나) 히로시마에서 가려고 했던 식당은 휴무일이다. 배도 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