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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22

20221208 [일본여행14]관심이라는 사랑의 행위

오노미치에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는 메시지에 고우는 배웅 대신 드라이브를 시켜 주겠다고 했다. 마침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같이 가자는 다정한 제안이었다. 어제 처음 만난 고우가 배웅을 고집하는 이유를 안다. 배웅과 마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위한 마음도 있지만 자신을 위한 이유가 훨씬 크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내 잃어버린 동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삶에 대한 태도나 성향이 닮았다. 어젯밤 라면 가게 마타타비에서 돈 없이 여행하는 고우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누구는 술을 누구는 밥을 사겠다고 서로 다투었다. 나는 지갑 속에서 5천엔 짜리 지폐를 꺼내 혹시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이 돈을 받아달라고 했다. 노래를 부르고 살아 보겠다고 한 걸음 내디뎠을 때 나는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의 대가 없는 호의를 받으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 한 걸음 내디딘 누군가에게 내가 받은 것들을 돌려주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내가 받아 온 것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돈으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으니 부끄럽지만) 나는 서로 주고받는 것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이 흐르고 흐르는 커다란 동그라미를 계속해서 그리고 싶다. 

 

늦은 오후에 고우를 만나러 항구에 갔다. 건너편 섬에 주차된 그의 집(차)은 캠핑용 도구들과 널린 빨래로 여행의 냄새를 잔뜩 풍기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고우가 고향인 후쿠시마를 떠나 도쿄로 상경한 이유는 밴드 활동 때문이었다. 지금은 니가타에 정착해 사진가를 꿈꾸면서도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밴드에 대한 열망이 있다고 했다. 새로운 노래를 서로 소개하는 동안 자동차는 음악을 싣고 지는 해를 좇아 달렸다. 빛이 다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도착한 아무도 없는 작은 해변에는 신사의 입구를 알리는 ‘토리이’가 석양을 오롯이 마주하며 서 있었다. 

 

고래불 해수욕장에서 말없이 바라보던 아침, 한낮, 해 질 녘, 한밤의 바다로 이미 한계치를 넘을 만큼 바다의 아름다움을 몸에 채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바다보다 산이 더 좋다고 외쳐왔는데 올해를 분기점으로 무게중심이 바다 쪽으로 이동했을 정도다. 이름도 모를 일본의 작은 해변에 도착해 바라본 하늘과 바다의 빛은 순식간에 내 의식 너머로 쏟아져 들어왔다. 세포 하나하나가 기쁨에 휩싸여 꿈틀거린다. 그 순간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았다. 모래 위에 앉아서 오늘이라는 해가 건너편 섬을 넘어 사라지는 동안 배웅하는 마음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츠카레사마데시타. 마타 아시타! (수고했어요. 내일 다시 만나요!)” 해가 지고 난 후의 하늘도 바다도 한참 동안 진주를 가득 흩뿌려둔 것처럼 오묘한 색으로 반짝였다. 사람이 무언가를 바라볼 때 각자의 머릿속에서 다른 색을 채워 넣는다고 한다. 어쩌면 모두 조금씩 다른 바다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재밌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 

 

귀중한 물건을 찬찬히 꼼꼼하게 바라보는 행동을 뜻하는 일본어 단어가 있다고 고우가 알려줬다. (뭔지는 까먹었지만…)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했다. 타인을, 자연을, 세상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구석구석 바라보는 것 자체가 사랑의 행위라고. 사진을 찍으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와 시간을 통해 깨달았다고 한다. <아티스트 웨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할머니의 편지가 떠올랐다. 삶의 물살에 발을 담그고 ‘관심’을 놓지 않는 작가의 할머니는 (우리 엄마와도 닮은) 언제까지나 따르고 싶은 모습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장면과 순간이라도 흘러가 버리고 만다. 해를 배웅하며 머문 그날의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 버리더라도, 각자의 삶 속에서 관심이라는 사랑의 행위를 이어가는 것만큼은 몸에 남았으면 하고 바랐다. 

 

대학 시절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쓴 레포트 생각이 났다. ‘Maximized Life’라는 제목이었다. 경험주의자로 온갖 경험에 나를 활짝 열어 최대한의 삶을 살고 싶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말이든 글이든 주문이 되고 기도가 된다.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조급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내내 조급해하며 살아왔다.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장면이겠지만, 어쩌면 스무 살의 그 주문 덕분에 오늘의 바다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전혀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지 않은 삶이었는데 돌아보면 내 몸 구석구석에 특별한 경험들이 새겨져 있다. 밤에는 고우와 CJ를 따라 모르는 사람의 송별회에 가게 되었다. 공장지대 한 가운데 작은 불빛을 따라 들어가니 클럽이 있었다. 밤에 시끄러워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위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필립이 오노미치를 떠나게 되어 그의 친구들이 악기를 하나씩 가져와 즉흥 잼을 하는 자리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남아공 사람에게 일본어 인사를 동시에 하고 음악에 빠져들었다. 기타 두 대와 베이스 두 대, 건반과 드럼 세트, 이름 모를 일본 전통 악기들이 모였다. 전통 악기의 소리를 내려면 온도를 맞춰줘야 한다며 누군가 난로 앞에서 나무 악기에 마사지를 하고 있다. 언제 끝날 지 아무도 모르는 음악에 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몸을 흔든다. 나중에는 래퍼까지 등장했다. “이런 게 되는 곳은 여기밖에 없으니까 놀자, 놀자, 놀자!”에 맞춰 다 같이 손을 번쩍 들어 위아래로 흔들었다. 오노미치 이야기로 작은 매거진을 만들 계획이라는 J라는 친구에게 내가 부산 배급을 맡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랬더니 ‘너도 오노미치 이야기로 글을 써서 책을 만들어 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만 하면 뭐든지 이루어질 것 같은 오노미치의 (진짜) 마지막 밤이 한 번 울리면 사라지는 즉흥 음악에 실려 둥둥 떠다녔다. 쿠라시키로 떠나기 전날 밤, 온갖 우연이 가져다준 색과 소리와 말을 머릿속에서 돌려보고 또 돌려보느라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