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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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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3 도울 준비가 된 사람들 비염 때문에 아침마다 머리가 무겁고 콧물이 흐르고 정신이 없다. 겨우 몸을 일으켜 밥을 챙겨 먹고 커피를 마신다. 돈 벌이 궁리로 영어와 기타 레슨 광고를 인스타에 올렸더니 저 멀리 인천, 경기도 사는 분들이 문의를 해 왔다. (동시에 팔로워 5명 쯤 줄었다) 피카홈(곧 오픈할 책방 겸 작업실)까지 집에서 걸으면 20분 쯤 걸린다. 햇살 아래 걸으며 인천에서 제로 웨이스트 식료품 가게를 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책방 준비 잘 되어 가냐고, 뭐 도울 일 없냐고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관심을 보인다. 언제나 도울 준비가 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행복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피카홈에 도착해서 살짝 청소를 했다. 왜냐하면 동네 카페 사장님이 오늘 가게 외벽에 부착된 지난 가게 간판을 떼어 주러 오신다..
20230220 너무나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오노미치에 사는 일본인이 인스타 팔로우를 해 왔다. 누구지 싶어 프로필을 뒤지는데 설마… 진짜?? 런던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 토시였다! 그때 내 과제에 출연도 해 주었는데 졸업 후 전혀 근황을 모르다가 소식을 알게 된 거다. 오노미치에서 친해진 타마짱 부부랑 절친이고 어쩌다 내 이야기를 했단다. 런던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친구는 마사라는 아이였는데 (역시 내 과제에 출연도 하고 비빔밥 먹으러 같이 많이 다녔는데…) 마침 토시는 며칠전 10년만에 도쿄에서 마사도 만났다고 소식과 사진을 전해주었다. 토시는 딸이 둘이고 마사는 딸이 하나란다. 세월이…… 어떻게 이렇게 우연히 친구들과 연락이 닿을 수 있지?! 너무 신기해서 일기를 쓴다. 토시는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내가 노래 만들..
20230119 맹렬히 청소중 화요일은 커다란 창문과 창틀의 묵을 때를 닦고 세탁 맡겨 깨끗해진 커튼을 달았다. 커다란 커튼의 사이즈가 달라서 혼자 뗐다 붙였다 고생을 좀 했다. 청소 전에 엄마에게 팁을 물었다. 오랜 청소 노동자 생활로 어느새 청소 전문가가 된 엄마는 창문, 타일, 바닥 등에 맡는 장비와 방법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멋있었다. 지난 명절에 엄마에게 받아 온 걸레가 이번에 빛을 발했다. 변화가 눈에 확 띄진 않아도 청소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수요일은 화장실이었다. 좀 더러워서 막연히 낡았나 생각했었는데 변기와 세면대, 벽과 바닥을 꼼꼼하게 닦아 주자 모두 새것 같았다. 회생 불가능해 보이는 변기 커버는 버리고 새로 달았다. 처음 해 보는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간단하게 교체할 수 있었다. 바닥과 변기를 잇는 백시멘트 ..
20221216 [일본여행20] 여행의 끝에서 책을 외치다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15분 타이머를 맞추고 글을 쓸 때가 있다. 상대가 고민이나 걱정을 털어놓으면 갑자기 종이와 펜을 꺼내 15분 타이머를 맞추고 생각나는 대로 손을 멈추지 말고 써 보자고 제안한다. 각자 쓰고 나서 낭독을 하면 그 안에서 뭔가 길이 보이기도 하고 답을 못 찾는다 해도 잠시 한숨 돌릴 수는 있다. 혼자서 글 쓸 엄두가 나지 않을 때도 타이머를 맞춘다. 그러면 어쨌든 시작은 할 수 있다. 머리가 북적거릴 때는 그냥 생각 없이 손을 움직여 보는 게 낫다. 생각과 행동의 거리를 줄이는 나만의 팁이다. 오늘 마지막 글은 타이머를 맞추고 쓰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길 따라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여행이었다. 여행기로 마무리를 해야지 생각했는데 긴긴밤을 여러 사람들과의 수다로 보내서 찬찬..
20221215 [일본여행19] 새로운 시작 일상에서 가장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재잘거리는 아이들이었다. 10월에 아이들에게 영어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좀 더 교사의 마인드를 키워볼 생각이었다. 전에 다른 대안학교에서 5년 동안 아이들을 만났던 경험을 다시 끄집어내고, 유튜브에서 선배 영어 선생님들의 팁을 배우고 익혔다. 준비한 게 아이들에게 잘 먹히면 무대 위 배우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요즘은 영어 그림책을 자주 읽어주는데 제멋대로 말 안 듣던 장난꾸러기들이 눈을 반짝이며 몰입하면 얼마나 짜릿한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성장에 책임을 지고 애쓰는 것에는 한참 못 미친다. 교육을 우선순위에 놓기에는 이미 해 오던 신경 쓸 것들이 많다. 학교의 사정으로 급하게 시작하게 되어 이번 학기는 임시로 짠 프로그램을 이리..
20221214 [일본여행18] 아끼는 마음과 매일의 걸음 5일짜리 레일패스의 마지막 날이다. 후쿠오카로 돌아가기 전에 조금 더 기차를 타 볼까 싶어 일본어 선생님이 알려 준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를 타고 시코쿠 섬까지 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기차 안에서 바깥 풍경을 실컷 봤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아쉬움에 멜랑꼴리한 기운이 창에 서리는 것 같다. 도착지 다카마쓰에 내려 거센 빗줄기를 뚫고 잠깐 걷다가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일본 사람들도 우동 먹으러 일부러 온다는 명소라지만 노리코상표 아침을 두둑하게 먹어서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시 기차를 타고 신칸센을 갈아탈 수 있는 오카야마로 향하는 동안 비가 그쳤다. 코로나로 2년간 중지되었던 오카야마 마라톤이 있는 날이라고 아침 방송에서 잠깐 보았는데 거리마다 달리기 좋은 가벼운 옷을 입고 삼삼오오 ..
20221213 [일본여행17] 이야기 수집 여행 해외 여행에서는 처음으로 에어비앤비 앱으로 숙소를 예약해 보았다. 사진과 정보도 잘 나와 있고 이미 이용한 숙박객들의 리뷰도 꽤 상세하다. 그걸 바탕으로 느낌과 예산을 잘 버무리면 원하는 숙소의 후보가 좁혀진다. ‘쿠라시키’로 검색해 발견한 슈지상의 숙소는 보자마자 정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주로 시내 가까운 곳에 숙소를 예약해 걸어 다니는 여행을 선호하지만, 여행의 막바지이기도 하고 픽업을 해 준다는 리뷰를 읽고 외곽에 있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선택했다. 앱에서 제공하는 메시지로 슈지상과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국제적인 회사라 그런지 자동 번역 기능도 있어 편리하지만, 오히려 고유명사인 기차역 이름이 이상하게 번역되어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다. 나카쇼역에 도착해 만나기로 한 남쪽 출구로 나갔더..
20221212 [일본여행16] 빗소리와 욕망 오랜만에 비가 내리고 있다. 수영을 마치고 뭔가 아쉬운 마음에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동네 카페에 들어와 커피 한 잔을 부탁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만 마시다가 언젠가 테스트로 내린 드립커피라며 대접해 준 게 맛있어서 요즘 저녁에는 ‘에티오피아 체첼레’를 마신다. 카카오닙스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지는 게 좋다. 축축하고 어둑한 창밖에 비치는 반짝이는 자동차 불빛과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어쩐지 낭만적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쓸쓸함도 운동으로 지친 근육도 나른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푹 자고 일어나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접영도, 아무리 반복해도 외워지지 않는 한자도 언젠가는. 오노미치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이후의 여행에 잘 집중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