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 정용준 외 지음

2022년 2월 24일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 금정연, 모호연, 송지현, 신예희, 윤덕원, 이랑, 정용준, 홍상지 지음, 곰곰

 

필사와 생각

 

p. 17

‘이걸 먹으면 나는 좋아질 거야. 이걸 먹는 동안 나는 괜찮아 질 거야. 두부는 원래 그런 음식이니까. 열 받은 사람의 열을 빼 주고 죄 많은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고 슬픈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해 주니까.’

그리고 처음에는 간장 없이 하나를 먹습니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 고소하고 부드러운 콩으로 만들어진 음식의 맛을 음미해 보세요. 다음부터는 간장에 살짝 적셔서 한 버넹 하나씩 입에 넣고 느리고 꾸준하게 우물우물 씹으세요. 허공을 보면서 길게 숨을 내쉬세요. 으음, 하는 기분 좋은 효과음을 내셔도 좋아요. 그렇게 당신의 이상한 밤은 평범한 밤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p. 22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보세요.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겠지만 나는 엄청나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 내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때는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 낫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마음과 몸의 상처들. 회복할 수 없을 것 같던 관계들. 부러운 사람들과 마음을 힘들게 하는 크고 작은 감정들. 그때마다 어떻게 했었나요? 해결책을 찾고 대단한 사람들의 대단한 도움을 받았나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해결됐는지도 모른 채 그것들은 몇 번의 밤과 몇 번의 계절 속으로 햇빛에 눈이 녹아 사라지듯 없어졌을 거예요. 그동안 나는 불면을 겪었지만 잠들었고, 입맛이 없었지만 먹었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공부를 하고,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갔습니다. 이번에 겪는 문제들도 앞으로 겪게 될 문제들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잘 해결해 줄 겁니다. 그 순간에는 내게 답이 없는 것 같지만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을 알고 있어요. 생각보다 나는 강하고 생각보다 나는 나를 잘 달랠 수 있습니다. 

…두부를 구워 보세요. 담백하고 고소한 두부를 스스로 대접해 보세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겁니다. 한 개 두 개 먹는 동안 설명할 수 없는 은은한 변화가 생길 거예요. 

밤에게는 아침이, 기운 없는 몸엔 힘이, 슬픈 마음엔 따뜻함이.

 

오래 전 친구에게 빌린 책을 돌려주고 싶어서 외출하는 길에 가방에 집어 넣었다. 지하철 안에서 펼친 책의 첫 장에는 잠들지 못하는 이상한 밤에 두부를 구워 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글자들이 느리고 따뜻하고 다정해서 몸과 마음이 훈훈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당장 두부를 구워서 먹고 싶어졌다. ‘살림력'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에세이와 팁이 소개되어 있는 작은 책이다. 효율적인 살림 방법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자신을 ‘살리고 싶은’ 고민과 제안이 담겨 있다는 게 마음에 든다. 요즘 나의 읽기에 적극적으로 등장하는 ‘능력주의'의 필터로는 살림이라고 표현되는 ‘돌봄 노동'에 값을 잘 쳐 주지 않는다. ‘살림'이라는 훌륭한 단어를 쓰고 있으면서 그 가치를 까맣게 잊고 사는 게 늘 안타깝다. 내일은 꼭 두부를 사서 반듯반듯 썰어서 바삭 촉촉하게 구워 먹어야지.

 

p. 54 ~5

일상이 망가져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방치하는 게 아니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방치해서 일상이 망가지는 것이다.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는 작은 관심과 행동이 필요하고, 작은 행동과 관심이 필요하다. 그건 작지만 결코 작지만은 않은 것들이다. 세탁기를 포함한 어떤 기계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삶을 살며 우리는 일상을 반복한다. 다시 말하면 반복하는 일상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의 시간이 흘러갔다. 스스로를 위한 수백 번의 빨래가 있었고, 두 사람을 위한 수백 번의 빨래가 이어졌다, 아내와 내가 번갈아 가며 하던.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세 사람을 위한 빨래를 한다. 아직 스스로 빨래를 할 수 없는 한 사람을 위해 아내와 내가 세 사람 몫의 빨래를 하는 것이다. 

…세 가지 빨래가 있다. 다른 사람이 해 주는 빨래, 스스로 하는 빨래,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한 빨래.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빨래는 다른 사람을 위한 빨래다. 그때 빨래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어쩌면, 모든 빨래가 이미 그렇다. (금정연)

 

p. 64

만들기로 성취감을 느껴 보면, 손으로 바꾸고 탄생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해 보고 싶어집니다. 가방 만들기, 옷 수선하기, 커튼 달기, 문손잡이 교체하기, 페인트칠하기, 방수 실리콘 보수하기, 세면대 배수관 교체하기, 욕조 코팅, 친환경 샴푸와 세제 만들기 등……. 그동안 제가 해 봤거나 종종 하고 있는 일입니다. ‘해 본 일'이 많아질수록 갑작스러운 문제나 필요가 발생해도 전보다 불안을 덜 느낍니다. 그 문제를 래결하는 방법은 분명히 있을 테고, 어쩌면 내가 해결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으니까요. (모호연)

 

p. 152 ~3

책은 잘 보여야만 있는 걸 알고, 알아야만 자주 손이 간다. 거실방의 다이닝 테이블에 앉으면 한쪽 의자에서는 책 표지가 보이는 책장이, 한쪽 의자에서는 기본책장이 보인다. 책이란 건 펼쳤을 때 비로소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물성이 있지만, 그 자체로도 메시지를 준다고 믿기에 집 곳곳에 책장을 마련해 둔 것이다. 

보기만 하면 금방 기운을 차릴 수 있는 것들을 수시로 마주 보고 싶다. 우리 집에서만큼은 당당하게 표지를 자랑하며 서 있는, 요즘 좋아하는 책을 보면서 오늘 자 한마디를 얻고 싶다. 어떤 책들은 딱 몇 권만 들어가는 작은 나무 케이스에 꽂아 두었다. 꽂아 둔 책들은 그저 필요하거나 읽히는 책일 뿐인데, 케이스 안에 넣은 책을 바라보면 ‘요즘의 나'라는 상태 메시지를 보는 듯하다. 때에 맞춰서 책들을 바꾸면서 요즘의 나를 나에게 보여 준다. 

책방에 가는 걸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마음. 책방 산책은 어쩌면 내 것이 될지도 모를 이야기를 일단 마주 보는 경험이다. 무엇 때문에 답답한지도 모른 채 기운이 내려가는 날에는 책방으로 향한다. 나와 맞든, 맞지 않든 간에 갖가지 기운들을 가만히 느낀다. 책의 저자들도 어느 날은 마음이 가라앉고 갈팡질팡한 일상을 보낼지라도, 조금씩 기운을 내고 이따금씩 뾰족해져서 힘을 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책의 모양으로 책방 여기저기에서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책들을 보면 힘이 나는 건지도. 나도 다시 한 번 시도해 볼까 하는 마음을 챙기게 된다. 

그렇게 만난 한 권의 책을 조금씩 집 안에 모으면서, 나를 일으킬 ‘보기' 하나를 더한다. 좋아하기에 자주 눈에 두도록 하는건 어쩌면 마음이 힘든 날을 위한 안전장치인지도 모르게. 좋아하는 걸 가까이에 두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모양으로 놓아 두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전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쉽사리 하루를 포기하고 싶은 이유가 된다. (임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