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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18

20181221 금요일

승민이 차려준 아침을 먹었다. 채식 선배님의 집에서는 배울 것이 많다. 배추된장국과 두부를 넣은 김치볶음밥 그리고 귤과 당근을 갈아 요거트를 살짝 넣은 디저트인지 에피타이저인지 엄청 맛있었다. 혼자서 세 가지 요리를 하느라 땀이 송송 맺힌 느낌의 빨간볼 승민. 빨간 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선경이 서둘러 나가야 해서 발맞추어 서두르는데 갑자기 타이어 앞 뒤 두 개에 펑크가 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갑자기 1시간의 여유가 생겼는데 그 시간이 나에게 그렇게 큰 행복을 주게 될 줄이야. 선경의 새 앨범을 찬찬히 들어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아름답고 황홀했다. 예전에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ost를 외울 정도로 들은 후 혼자 비디오방 1인실에서 영화 보면서 너무 좋아서 소리지른 적이 있다. 그때 그 느낌이었다. 혼자 선경이 부르던 노래를 몇년에 걸쳐 듣다가 거기에 콘트라베이스가, 드럼이, 건반이, 비올라가 더해져 있다. 선경이 그리는 그림과 연주자들의 실력이 더해져 정말 환상적인 앨범이 탄생했다. 선경은 확실히 그림같이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이번 앨범은 그 그림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나를 어떤 풍경속으로 순간이동하게 만든다. 마음이 벅차오르고 울컥했다. 자랑스럽고 부럽기도 하고 하루종일 마음이 술취한 듯 들떠 있었다.

쇼케이스 공연답게 앨범 세션들과 합주를 하고 또 만드는 과정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었다. 그동안 선경이 제주에서 일군 시간과 사람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이번 앨범 역시 그 시간을 선경의 노력으로 엮어낸 것이었다. 선경의 색으로 가득 채워진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나의 게스트 공연은 마음이 너무 벅차서 그렇게 잘하지 못했지만 승민이 게스트인데 선경보다 잘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고 했다. ㅋㅋ 노래는 잘 못했지만 축하하고 고마워하고 감격한 마음은 꽉꽉 눌러 모으려 애썼다. 위로의 맛, 바다, 자장가를 불렀는데 특히 바다의 마지막 부분을 살짝 개사해서 불렀던 건 잘한 것 같다. 백석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시로 만들었겠지만 나는 그간 선경과 함께한 순간들을 생각하며 불렀기에 마지막은 쓸쓸하거나 섪은 게 아니니까, 웃음이 나고 흐뭇하다고 바꿔 불렀다. 강정에서 온 선경의 오랜 친구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반가웠고, 냉이네 가족을 잠깐이나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선경과 승민을 이어주었다는 스승님과 제자 한 분이 서울에서 오셨는데 밤에 선경집에서 함께 모두가 흐뭇한 마음 가득 가지고 와인 마시며 마무리했다. 시간이 멈춘 그들의 거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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