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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22

20221128 [일본여행06] 여행은 환대

수영장 친구와 수다를 떨던 중 친구가 ‘언니 여행 이야기 들으면 나도 뭔가 도전하고 싶어져요!’ 한다. 친구는 부산으로 이사 오기 전 교회에서 간사로 일하며 이런저런 해외 선교 활동을 다닌 적이 있단다. 내 여행이 마치 선교를 떠나서 현지인을 만나는 경험과 비슷해 보여서 신기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첫 해외 여행이 떠올랐다.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두 달간 지내기 위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간 김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몇몇 지역을 여행하기도 했다. 손님을 환대하는 중동 문화권이 여행의 첫 경험이라 그런지 인간은 일단 여행자를 환대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동이 원활하지 않던 시대에는 여행자가 먼 곳의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첫 여행의 경험으로 인간에게는 이방인을 먹이고 재우고 환대하는 DNA가 남아있다고 믿게 되었다. 

 

대학 시절 첫 겨울방학을 외국에서 환대받으며 보낸 경험이 하도 반짝거려서 다음 여름방학 두 달은 동티모르 평화 캠프에 참가하기로 했다. 여행 계획은 하나도 없었지만 발리와 동티모르를 잇는 작은 비행기가 자꾸 결항되어 시간이 생겼다. 발리에 사는 한국인 한 분을 비행기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한국 대학생들이 동티모르에 봉사하러 간다’는 게 신기했던 모양인지 지인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했단다. 다음 날 발리에서 관광업을 하고 있다는 한 아저씨가 우리의 얼굴이 궁금했다며 일부러 찾아왔다.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우리를 차에 태워 발리 관광을 시켜 주시고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주시는 게 아닌가. 발리 한식당에서 배부르게 밥을 먹고, 호화로운 호텔의 수영장 같은 곳을 구경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우리가 자기 대신 좋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나누고 싶다고 했다. 

 

뭐든 초기 세팅 값이 중요한가 보다. 나에게 여행은 ‘현지의 사람들에게 환대받는 것’으로 입력되어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내가 있는 곳에서 여행자를 충분히 환대하는 것’ 역시 내 여행의 정의에 포함되어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20여 년 전에는 해외여행을 갈 때 ‘한국적인 선물’을 챙겨가라는 팁이 있었다. 인삼 껌이라도 챙겨 가는 게 예의라는 분위기였다. 여행지에서 지인을 위한 기념품을 사 오는 문화는 더욱 커진 것 같은데, 우연히 만날지도 모르는 타인을 위한 선물에 대한 이야기는 줄어든 느낌이 든다. 세계화 시대에 새로운 문화는 여행자가 아니라 미디어와 온라인으로 전해지는 법이니까. 시대를 쫓아가지 못하는 내 여행 가방에는 아직도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선물이 들어있다. 한국이 드러나는 기념품은 아니지만,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내가 만든 물건을 조금 챙겨 넣어 둔다. CD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점점 없어지면서 앨범의 재고가 없어도 더 만들지 않는다. 즉, 안 팔린다는 말이다. 덕분에 아직 조금 남아있는 3집 앨범 다섯 장을 이번 여행의 선물로 가방에 챙겨 넣었다. (일본은 아직 CD플레이어 쓰는 사람 있겠지…) 결과적으로 앨범 다섯 장이 모자랄 정도로 여행자를 환대하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 훌륭한 여행이었다. 

 

막상 선물을 꺼낼 순간을 찾는 건 어렵기도 하고 자연스럽기도 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CD를 꺼낸 곳은 Lumo Books and Works라는 헌책방 겸 갤러리였다. 구글 지도로 책방을 검색하다가 화요일에 여는 곳 중에 가장 재미있어 보여서 들어가 보았다. 주인도 손님도 없어서 뻘쭘하게 내부를 둘러보니 미스터리, 에로스, 역사, 인디매거진 등 나름의 큐레이션으로 재밌는 책을 분류해 두었다. 한쪽에는 여러 돌멩이와 돌멩이나 조개껍데기 등으로 만든 장식품이나 곤충 표본, 작은 박제 동물도 있다. 글자를 잘 못 읽으니 선뜻 책을 고르는 건 무리군, 하고 느낄 무렵 손님 하나가 책방에 들어왔다. “아무도 없네요”라고 말을 걸어서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고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이렇게 일본어를 잘 하느냐며 관심을 보였다. 단골이냐고 물었더니 실은 후쿠오카 아카이빙 책자 작업으로 책방 사장님과 회의를 하러 오셨단다. 마침 여자 사장님이 나오셔서 대화가 들리길래 당연히 내가 일행인 줄 알았다며 또 놀란 눈이 되고…. 서울의 헌책방에 가 본 적이 있지만 글자를 모르니 전혀 즐겁지 않더라며 장난스럽게 말씀하시는 밝은 분이다. 바로 그 심정이라고 내가 맞장구를 쳤다. 안쪽에서 눈 비비고 나오신 남자 사장님도 대화에 끼어들었고, 세 사람은 ‘한국어 공부 조금 하다가 어려워서 포기했는데 핑계였군. 분발해야지’ 하며 나를 추켜세워 주었다.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디자인 작업을 하신다는 아이상은 손님과 함께 회의를 하러 자리를 옮겼고, 나는 일러스트 작업을 주로 하신다는 코지상과 책방에서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여행의 목적이 일본어 쓰기밖에 없다는 말에 책임감을 느끼셨는지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데도 열심히 대화를 이어가 주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먼저 부산 여행 사진을 뒤져서 보여 주셨는데 역시나 내용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감천문화마을, 해운대 용궁사, 신창 토스트 ㅎㅎ) 어떤 일러스트를 하는 지도 보여 주셨는데 캐릭터, 로고, 광고 일러스트 등 다양한 작업물이 가득했다. 학창 시절부터 친구 사이였던 두 사람은 작업실 겸 갤러리를 꾸려 오다가 한 켠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헌책방을 시작했다. 곤충표본이나 돌멩이 같은 것도 어릴 때부터 수집하고 만들어 온 것들이라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며 다자이 오사무의 오래된 책 한 권을 들고나왔다. 코지상은 종이 위에 ‘신주 心中’이라고 쓰고 뜻을 설명해 주었다. 몇 안 되는 아는 한자 두 개라서 반가워했더니, 뜻은 전혀 예상 밖으로 ‘연인과 동반자살’을 뜻했다. 다자이 오사무가 몇 번의 ‘신주’ 시도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쓴 소설의 마지막 구절을 펼쳐서 보여주었는데 책 제목과 구절을 잊어버렸다! 사진이라도 찍어 둘 걸 후회가 된다. (<츠가루>나 <사양>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살아 있음’에 대한 희망 같은 것으로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몇 번의 죽을 결심과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후 쓰여진 한 문장이라 더욱 무게가 느껴진다고 말했던 것 같다. (일본어 쓰는 데 심취해서 중요한 걸 놓쳤군 ㅠ) 

 

집중력을 잃을 정도로 외국어 대화를 길게 이어갔으니 선물을 꺼낼 타이밍이다. 3집 앨범을 내밀며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를 번역에 부른 노래가 있다고 했더니 서가에서 미야자와 겐지와 관련된 몇 권의 책을 꺼내 보여 주셨다. 고마운 마음에 판화로 된 그림책 한 권과 사진과 지도와 도표 등으로 작가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가 담긴 책을 사기로 했다. 책방 입구에 코지상이 디자인한 오리지널 책 포장지가 있길래 한국에 가져갈 선물로 딱이다 싶어 왕창 집어 들었고, 유일하게 로고를 아는 미시마 출판사의 책이 한 권 보여서 챙겨서 카운터로 갔다. 코지상은 할인까지 해 주면서 책방에서 만든 독립출판물과 자신이 디자인한 어느 축구팀의 캐릭터 인형을 선물로 내밀었다. 대화만으로 이미 넘치는 선물을 받았는데 너무 고마워서 (마음으로) 팔짝팔짝 뛰었다. 바로 가방에 매달아서 지금도 여행의 기억을 지니고 다니는 중이다. 

 

책방에서 만들었다는 작은 독립출판물도 무척 의미가 깊었다. 아이상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할아버지의 스케치북이 어머니의 유품에서 발견되어 손녀가 할아버지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설명을 들었)다. 얇은 진 형태의 책 속에는 여행 중이던 할아버지의 스케치북에 있는 수채화 두 점과 아이상의 글, 코지상의 일러스트가 실려있다. 우리나라의 독립출판물은 기성 출판물의 형태가 많아서 좀 아쉽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작고 다양한 이야기를 간편하고 다채로운 물성으로 만나고 싶었는데, 딱 그런 모습의 책을 선물 받아서 더욱 좋았다. 다음에는 부산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 나오며 ‘역시 여행은 책방 여행이지’ 콧노래를 불렀다. 책방은 언제나 환대가 있는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