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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22

20221125 [일본여행05] 내가 되는 삶

다시 기차 안이다. 2주 전에는 일본이었고, 이번에는 부산에서 서울, 서울에서 강릉이다. (강릉에서 서울 가는 기차 안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문진 고등학교 도서관 선생님이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를 읽고 언젠가 한 번쯤은 학교의 아이들과 만나게 해 주고 싶으셨단다. 부르면 어디든 가는 동네 가수지만, 부산에서 강원도는 자주 갈 거리는 아니다. 운전해도 6시간 이상 걸린다고. 출근 날짜와 겹치기도 해서 한 번 고사했다가, 시간까지 변경해서 간곡하게 부탁해 오니 두 번 거절할 수는 없었다. 밤에 서울역에 도착해서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 묵고 새벽 6시 기차를 타고 강릉에 가 보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핑계 삼아 서울 사는 친구들 얼굴도 잠깐 볼 수 있을 테니. 

 

서울에서 숙소를 잡아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밤의 서울역은 쓸쓸하다. 숙소에 짐을 두고 동네를 조금 걸었다. 월드컵 경기가 있는 밤이어서 가게마다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이 가득가득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더욱 쓸쓸함이 느껴졌다. 서울의 뒷골목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걸어 다닌 건 아마도 지난 일본 여행의 영향인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로 출근과 행사와 회의와 메일링 등 매일 바쁘게 지낸 덕분에(?) 낯선 잠자리 따위 전혀 개의치 않고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캄캄한 새벽에 눈을 떠 기차를 타러 갔다. 

 

이번 행사가 ‘밑줄 콘서트’는 아니었지만, 예쁜 엽서에 소개하고 싶은 책의 구절들을 필사해서 가져갔다. 몇 장은 기차 안에서 베껴쓰기도 했다. 도서관 행사니까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중 도서관에 관한 구절로 시작하고 ‘책방 예찬’을 불렀다. “책은 낯선 이의 몸속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라는 문장은 언제 꺼내 봐도 근사하다. 무루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중 사노 요코의 <태어난 아이>에 대한 부분을 나누며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완벽하게 준비해 시작하기보다 지금 내가 가진 것,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그것은 서른즈음의 이내가 새로 ‘태어나기로 한’ 선택이었다. 나의 이십 대가 워낙 캄캄했어서 곧 그 나이가 되는 아이들에게 도저히 기대를 심어 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천번 만번 실패하고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고, 데릭 젠슨의 <네 멋대로 써라>의 구절을 빌려 전했다. 다만 ‘그것이 누군가가 들씌운 고통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겪는 것이라면 그 결과는 전혀 다를 것이고 결국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거라고 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데릭 아저씨가 무슨 소릴 하는지 잘 몰랐다. 10년쯤 지나 다시 읽고 또 읽으면서 ‘내 삶이 내 것인 것처럼’ 살고 싶어진 데에는 이 책의 영향이 컸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되는 삶’.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그거 하나뿐이다. 너희는 부산에서 기타를 메고 기차를 타고 찾아온, 스쳐 지나가는 나를 몽땅 잊을 테지만, 뒤통수 한구석에 ‘그때 그 말은 무슨 의미였지?’ 어렴풋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놀이와 재미’를 예찬하는 구절을 나누고, 미시마 쿠니히로의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 중 ‘감각’과 ‘이치’의 균형을 말하는 구절도 나누었다. 어린 시절에는 서로를 흉내 내며 자신과 사회를 배운다. 요즘 만나는 초등학생 아이들을 보며 새삼 느끼는 부분이다. 하지만 모두 다른 존재인 우리는 각자 느끼는 재미와 감각이 다를 수 있다. 아니, 다른 게 자연스럽다. 기차 안에서 필사를 하며 ‘이것은 나의 놀이이고 재미구나!’ 깨달았다. 내가 행복해지는 여행은 걷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국의 음식을 먹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역사의 흔적을 발견하며 기뻐한다. 이런 사소한 발견들-내가 무엇을 할 때 재미있고, 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고, 분노하거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것-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되고 자신이 되어간다. 내 삶이 내 삶인 것처럼 산다는 것은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지만,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우리가 날씨다>의 구절로 기후 위기와 비거니즘을 이야기했다. 오늘 내가 만난 아이들과 비슷한 세대의 그레타 툰베리를 통해서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으니 기성세대로서 이런 지구를 내맡기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해야 했다. 마지막은 정혜윤 작가님의 <사생활의 천재들> 속 ‘다시’라는 세상 가장 아름다운 말로 맺었다. 앞에서 뭔가 이룬 사람처럼 떠벌리고 있지만, 밤마다 이불킥을 하며 모순을 껴안고 잠 못 이루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때마다 나를 살린 말은 언제나 ‘다시 시작해 보자’는 목소리,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고정된 게 아니라 ‘지금 여기’를 통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담긴 주문이다. 

 

2~30명의 아이들과 몇몇 선생님들이 들고 나고 듣고 외면하고 낭독하고 눈을 반짝이고 엎드려 자기도 하는 두 시간이 지나갔다. 내 책과 노래에 반응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거울로 자기를 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초대한 도서관 선생님은 맛있는 점심을 사 주시며 자신이 시도하고 싶은 것들을 수줍게 말씀해 주셨다. 아이도 청소년도 어른도 노인도 모두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 자신이 되어 가는 중이다. 다시 시작할 마음만 잊지 않으면 된다. 동해 바다를 조금 걸으며 예쁜 조개껍데기를 주웠다.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라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와서 사진을 찍고 다시 우르르 사라지길 반복한다. 밤의 서울역과는 다르게 밝고 맑고 푸르렀지만, 비슷한 쓸쓸함을 느끼며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달리는 작은 버스 곁으로 한쪽엔 바다, 한쪽엔 솔숲이 있는 아름다운 해변 길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