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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22

20221123 [일본여행03] 자신감 충전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의 비행시간이 너무 짧아서 (하늘에서 20분) 깜짝 놀랐다. 제주나 서울 갈 때보다 더 짧게 느껴졌다. 후쿠오카 공항 정보가 하나도 없었는데 탑승 직전에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 클립에서 국제선에서 국내선까지 무료 셔틀버스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그대로 따라 움직였다. 후쿠오카를 주로 다루는 유튜버가 공항을 소개하며 질문을 하나 던졌다. “후쿠오카의 가장 좋은 점은? 정답은 라면도 포장마차도 아니고… 공항에서 시내가 가깝다는 점!” 구글 지도로 검색해 보니 공항에서 숙소까지 걸어도 55분이었다. 몇 년 전 사 둔 오사카 지역 교통카드 ‘이코카’를 챙겨 갔는데, 그 사이에 전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가 생겨 있었다. 공항에서 현금을 조금 충전해서 하타카와 텐진 중간쯤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공항선 지하철을 탔다. 퇴근 시간의 지하철에서 일본 직장인들을 구경하고 온갖 광고판 속 글자를 더듬더듬 읽어 보느라 눈이 바빴다. 

 

숙소와 가장 가까운 역인 기온에서 내려 10분쯤 걷는데 커다란 절과 주택가를 지나야 했다. 조도가 높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후쿠오카는 부산이랑 느낌이 비슷한 것 같다. 대도시면서도 인구는 많지 않고 관광지의 편리함도 갖추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거리와 집들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점. 며칠 걷다 보니 다양한 스타일의 크고 작은 절과 신사가 많아서 ‘여기가 일본이구나!’ 싶은 분위기가 이국적인 매력을 뽐낸다. 

 

이틀을 묵기로 한 게스트하우스 HIVE는 오래된 2층 목조 건물을 젊은 감각으로 꾸며둔 곳이었다. 평일인데도 거의 만실일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북적였다. 몇 개월 머물면서 일하는 스텝의 수가 많은 게 조금 신기했다. 체크인은 내가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써 보는 첫 번째 관문이었다. 입을 떼는 순간에는 언제나 조금씩 버벅거리게 되었지만, 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배가 고파서 근처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물었더니 어떤 걸 좋아하냐고 해서 ‘밥!’이라고 대답했다. 자신이 가 본 적은 없지만 문 앞에 ‘쌀이 맛있는 집’이라고 써 붙여진 식당이 있다고 에어드롭으로 주소를 보내준다. 주소를 에어드롭으로 보낼 수 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이후 일본 여행에서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했다. 일본 한자는 읽는 방법이 워낙 다양해서 영어나 구글 번역만으로는 찾을 수 없는 장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천받은 ‘아카리’라는 이름의 이자카야도 한자 이름만 등록된 모양인지 검색에 잡히지 않았다.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곧바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혼자 이자카야에 들어가는 진입장벽이 좀 있긴 했다. 술을 그렇게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한국에서도 혼자 술집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조금 긴장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월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카운터 자리에 앉아서 알바생에게 나는 한국에서 왔고 메뉴를 읽을 수 없으니 설명을 좀 해 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쌀이 맛있다는 추천을 받았다고 슬쩍 말했더니 오니기리(삼각김밥)와 오차즈케(녹차에 밥을 말아 먹는 음식) 종류부터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일본 이자카야에는 술을 마신 후 마무리로 먹는 밥 메뉴가 메뉴판 마지막 부분에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저녁밥이 간절해서 오니기리 하나와 오차즈케 절반 사이즈를 먼저 주문해버렸다. 순서가 완전 바뀐 셈이다. 여행 전부터 배탈 기운이 있어서 좀 가벼운 메뉴로 보이는 아게다시토푸(튀긴 연두부에 다시 베이스의 뜨거운 소스를 끼얹은 요리)와 사시미 세 점을 생맥주 안주로 골랐다. 최대한 비건 지향으로 하고 싶었지만 가게의 메인 메뉴를 하나쯤은 시키는 게 예의일 것 같았다. 이상하게 나는 소비할 때 중심이 나에게 없다. 돈을 내면서 미안해지는 마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어느 가게를 들어가도 그렇다. 

 

배를 든든히 채우면서 가게에 틀어 둔 테레비를 힐끔거리다가 점원에게 말을 걸었다. 코로나 전에는 부산에 미용 여행을 자주 갔었다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감천문화마을, 해운대 용궁사, 광안대교, 자갈치 시장, 그리고 신창토스트가 보인다. 완전 익숙한 장소들이다. 나도 친구들이 부산에 놀러 오면 국제시장 골목에 있는 신창토스트에 데려가곤 한다. 하얀 요리사복에 주방장 모자를 빳빳하게 세워 쓴 할아버지가 정성껏 토스트를 구워주는 작은 가게다. 이후로도 후쿠오카에서 부산에 와 본 적 있는 일본인들의 사진첩에는 반드시 신창토스트가 있는 게 신기하고 반가웠다. 점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가게의 주인이자 주방장님도 수줍게 끼어들었다. 부산에 친한 가족이 있어서 자주 갔었는데 지난 3년은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경기침체로 갈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가게 이름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더니 4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등명’이라는 한자는 ‘아카리’라고 읽고 신에게 올리는 등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가게를 시작하고 어머니를 갑자기 여의고 곧이어 코로나가 시작되었던 지난 몇 년이 꽤 고생스러웠던 모양이다. 수줍은 목소리에 쓸쓸함이 조금 묻어나왔다. 가게에서 대화를 나눈 모두가 문밖까지 배웅해 주며 나의 남은 여정을 응원해 주었다. 일본 사람들이 인사를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게 참 좋다. 처음 만난 사이, 잠깐 만난 사이라도 만나고 헤어질 때 반드시 정성껏 인사를 전해준다. 홀로 낯선 곳을 다니는 여행자에게 보내준 정성 어린 인사들 덕분에 조금도 외롭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외로울 때 들으라고 친구가 카톡으로 음악을 보내 주었는데, 여행기간 동안 가져간 이어폰은 트렁크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나올 기회를 끝까지 찾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일기를 썼다. 여행의 시작부터 유일한 목적이었던 일본어 대화를 잔뜩 나눌 수 있어서 들뜬 기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누구라도 붙잡고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마구 넘쳤다. 이 정도로 편하게 일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 사람이라고 했을 때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고 깜짝 놀라는 일본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게 내내 짜릿했다. 사실 그 정도의 실력은 아닌데 (글자도 전혀 못 읽고…) 대부분 반응 속도에 놀라는 것 같았다. 글자 공부를 무시하고 최신 일본 프로그램과 라디오를 (과하게) 꾸준히 보고 들었던 공부 방법이 나에게 잘 맞았나 보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잠을 좀 설쳤다. 둘째 날 가 보고 싶은 곳들을 이리저리 검색해보며 설레는 긴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