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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22

20221007 매일이 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밥을 챙겨 먹었다. 얼마 만에 누려보는 아침의 여유인지. 행복했다. 동네 친구와 동네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함께 걸어서 수영장에 갔다. 그것도 행복했다. 일주일 만에 접배평자 몇 바퀴를 돌고 다이빙 입수를 무한 반복했다. 여전히 다이빙은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수영을 마치고 나왔을 때의 상쾌한 기분은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 행복해서 나도 모르게 동네 수영 친구에게 일본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맥락 없음) 물론 친구가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해서 일본어를 잘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친구는 오랜만에 일본어로 말해 본다며 처음에는 쑥스러워했지만 곧 둘 다 신이 나서 일본어로 수다를 떨었다. 

 

부산에 시집와 1년쯤 지난 친구는 적응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은 보내다가 최근에야 이런저런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해 보는 중이라고 했다. 웹디자인이나 웹호스팅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해서 문득 나의 아티스트 사이트를 만들어 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보았다. 매일 쓰는 글을 아카이빙하고 노래하는 이내에 대한 정보가 담긴 블로그 형식의 웹사이트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마침 하던 중이었다. “재밌을 것 같아요!” 친구의 대답에 신이 한층 더 오른다. 서로의 필요를 맞춰가며 아이디어를 나누는 건 언제나 짜릿한 일이다. 최근에 두 사람이 떠올린 생각이 딱 맞아서 떨어지니 이것이야말로 동시성! 

 

제주에서 손님이 왔다. 1년에 한 번 아버지 산소에 갈 때마다 우리 집에 들른다. 우리 동네의 자랑 비건 식당 ‘오붓한’에 데려가서 뇨끼와 야채오일구이를 맛있게 먹었다. 부산영화제 기간이라 그런지 외국인 손님이 많이 있었다. 영국에 오래 살다가 올해 초 제주 서쪽 바닷가 마을에 정착한 친구는 매일 보는 석양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이는 얼굴에 마음이 놓인다. 밥을 먹고 나서는 친구의 고향인 영도를 걸었다. 중리 밤바다의 자갈 파도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고향을 걷는 친구를 나도 따라 걷는데 왜 내 마음이 벅차오르는 거람. 부산은 나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영도 출신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마음에는 어딘가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 친구는 영도에서 태어나 영국 섬나라에 오래 살다가 지금은 제주도에 산다. 섬사람의 정서를 내가 알 길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산동네 사람의 정서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산과 바다가 풍요로운 곳에서 나는 매일 언덕을 오르고 (수영장이지만) 물속을 가른다. 

 

잠을 잘 잤지만 누적된 피로가 잘 풀리지 않는다. 오랜만에 한 수영이 즐겁긴 했지만 조금 무리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오늘은 자유형과 배영을 좀 더 가볍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느꼈다. 25미터도 못 가서 헉헉댔는데 가뿐하게 한 바퀴를 돌았다. 요즘은 평영을 잘 안 시켜서 불만이고 접영은 아직 한참 멀었다. 어쩌다 보니 2주 정도 수영을 꾸준히 못 하는 동안 4시 타임의 오합지졸 동료들의 수영에 물이 좀 올라 있었다. 서로 동작을 꼼꼼하게 봐주고 계속하면 된다고 격려해 주는 모습이 언제나 보기 좋다. 다른 시간대에는 텃새 같은 게 좀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 시간대는 우리가 초창기 멤버다 보니 분위기가 산뜻하다. 6개월간 변함없이 정성껏 가르쳐주는 강사님도 최고로 좋다. 나는 지금까지 늘 변화무쌍한 생활을 해 왔다. 부산 안에서도 어느 한 시기에는 영도를 주야장천 가다가, 그다음에는 우리 동네 골목을 주구장창 헤매다가, 그 다음에는 저 멀리 동네에 출몰하다가, 지금은 일주일에 3일 출근하는 새로운 동네가 생겼다. 나란 사람은 어디서든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운명이구나 생각하다가 수영 멤버들과 어느새 정이 들어버린 걸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매일 글을 써서 보내는 일도 어느새 6개월째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매일 쓰기로 한 약속의 대상이 있어 주어서 시원찮은 글이라도 꾸준히 쓸 수 있었다. 글을 갈무리하고 고치는 것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다. 꾸준히 쓰는 것도 못 하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으니, 정리하고 다시 쓰는 일도 언젠가는 가능하게 될지 모른다. 동네 친구와 웹사이트 만드는 일이 잘 풀리게 된다면 부족한 아카이빙의 기술이 늘 수도 있겠다. 제주에서 온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까맣게 잊어버린 영화음악 생각이 났다. 참여한 다큐멘터리 작품이 부산 국제 독립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오늘 전해 들었다. (감독님은 내가 자기 딸의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는 소식에 더 환호성을 질렀다.) 다시 영상 음악을 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늘 삐걱거리며 걷고 있다. 음악도 글쓰기도 외국어도 운동도 가르치는 일도 삐뚤빼뚤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제는 걸음이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걷는 길이나 속도는 모두가 제각각이니까 매일 밤 한숨 푹 자고 그저 내 걸음을 이어가 보자고 지친 몸에게 말해본다. 죽을 때까지 나에게는 매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