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리고 보니 밤 9시가 되어 있었다. 스마트폰을 붙들고 인생술집 짤을 멍하니 보던 중이었다. 아 맞다, 글 써야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다. 3일 연속 출근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장소를 옮겨 두 시간가량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끝나고 또 부랴부랴 집에 돌아와 화상 회의를 한 기억까지 있는데 그다음이 끊겼다. 연예인들이 하는 농담을 웃지도 않으면서 쳐다보고 있다. 댓글 알람으로 들어간 유튜브는 요즘 잘 안 보여서 궁금했던 제제가 아는 형님에 나온 짤을 보여주었고 그걸 무심히 클릭한 게 시작이었다. 재미는 없었다. 제제의 매력도 드러나지 않았고 시시껄렁한 멘트들도 식상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다음으로 다음으로 영상을 클릭하며 두 시간가량 멍하니 앉아 있었던 걸까. 오늘의 글을 써야 한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면 몇 시간을 더 그렇고 앉아 있었을 수도 있다. 노동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미디어도 또한 무섭고.
오늘도 무사히 수업을 마쳤다. 아이들은 두 번째 수업에서 낯선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줄었고, 거기에 비 오는 날씨의 영향까지 더해져 산만함은 증폭되었다. 기운이 없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 했지만 나에게는 당황해서 손을 놓지는 않을 만큼의 노련함이 생겨 있었다. 한창 어른의 간을 보며 기 싸움을 하는 나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3학년 선생님은 자신이 초반에 권위를 잘 잡지 못해서 편한 이모 같은 상태가 되었다며, 부디 선생의 위치를 잘 잡아달라고 말씀하셨다. 죄송하지만 나도 이미 늦었다고 대답했다. 그럴 수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하지만 아이들은 다 안다. 내가 자기들을 무서워하기는 해도 무시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노력해 봤는데 기세나 재미로 이끌어 갈 능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대신 호기심으로 대응해 보았다. 어떤 것에 반응하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자기 힘으로 무언가 해내는 것을 원한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해 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한다. 아이들에게는 규칙을 만들어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을 자주 받는다. 그 부분이 가장 어렵다. 오늘 17년간 발도르프 교육을 해 온 선생님이 저학년 아이들은 무엇이든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나이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의미 있는 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라고 말씀해 주셔서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나는 이야기였다.
1학년 선생님께 용기 내 어제 일을 상의드렸는데 그냥 아직 아기들이라서 그렇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 몇몇 선생님들이 함께 점심을 먹다가 성교육에 대한 주제가 나왔는데, 중국어 선생님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기도 했고 아이들이 몸에 대한 농담을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무도 답은 모르는 것 같았지만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는 게 조금은 든든하게 느껴졌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바라보고 서로 생각을 주고받는 어른들이 모여있는 작은 교무실이었다. 나도 작은 아이들처럼 계속 질문을 던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5학년이 되면 전국 올림피아드에 출전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대충 듣고 무슨 수학 올림피아드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점심시간 강당에서 열린 출정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교생이 모여 있는 자리에 6학년 아이들이 준비한 리코더 합주에 맞춰 그리스 신화에 나올 법한 의상을 입은 늠름한 5학년이 행진을 했다. 게다가 직접 만든 옷이란다. 선언문을 낭독하고 길을 떠나는 아이들을 향해 1학년 고사리손부터 모든 선생님까지 크게 응원의 박수를 쳤다. 신기한 장면이었다. 모두가 모인 장소에 있는 건 처음이라 구석에서 관찰자 모드로 서 있는데 몇몇 고학년 아이들이 다가와 처음 보는데 누구냐고 물었다. 새로 온 영어 선생님이라고 하니 예의 바르게 잘 부탁드린다고 악수를 청했다.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다. 내가 모르는 세계의 시간이 어딘가에서는 성실하게 흘러가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기본 소득만 생각하고 시작한 일터는 상상보다 복잡하고 거대하며 많은 사람의 마음이 찰랑거리는 곳이다.
다음 스케줄은 여성인권단체의 성매매 여성 재활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함께 부르고 만드는 일이었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서 노래를 만드는 것까지는 할 수 없었다. 대신 6~70대의 여성들과 옛 동요를 함께 부르면서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들었다. 수집한 이야기들로 따로 노래를 한 곡 만들어 나중에 선물로 드리고 싶다. 즉석에서 함께 노래를 만드는 능력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노래는 늘 혼자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같이 입 모아 동요를 부르는 시간은 꽤 즐거웠다. 어디서 배운 건지도 모르는데 세대와 상관없이 몸에 남아 흘러나오는 동요라는 장르가 새삼 신기했다.
이번 달 말에 서울에서 있을 공연을 준비하는 화상 회의가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골목’을 주제로 한 공연이라서 꼭 내가 함께해 주면 좋겠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설렜다. 메일로 공연에 대한 정보를 받았을 때도 준비하는 사람들의 섬세함이 인상적이었는데, 오늘 회의로 화상이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니 공연도 하기 전에 벌써 감동과 기쁨이 느껴진다. 이번 생에 디테일은 내 몫이 아니라고 받아들인 터라 바깥의 누군가에게서 발견할 때마다 감탄과 존경의 마음으로 가득 차 버린다. 간단한 서류만 오가는 행사가 대부분이라서 더욱 그렇다.
올해는 부산영화제를 잔뜩 누려볼까 싶었는데 어려울 것 같다. 토요일에 애니메이션 만드는 친구가 커뮤니티 비프에 초대되어서 덕분에 한 편은 볼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는 처음 만난 날 자신을 ‘하루에 2초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1초에 8~15프레임이 들어가기 때문에 하루에 16~30장을 그리는 셈이다. 그때도 내가 모르는 세계의 시간이 어딘가에서는 성실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주중의 노동은 주말을 소중하게 만들어 준다. 내일은 수영장에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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