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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19

20190821 수요일 ‘이틀의 기록’

어제는 ‘뿌리’라는 이름의 모임에서 수다를 떨었고 저녁에는 페미니즘 학교 워크샵에 노래하러 갔었다. 촬영중이어서 조명이 엄청 좋았네 ㅋㅋ 그리고 부산에서 다양한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모인 조촐한 자리가 되었는데, 즉흥적으로 질문을 써 내고 각자 뽑아서 대답하는 집단 지성의 시간이 되었다. 여성들이 소수 모이면 대체로 좋은 시간이 되더라. 응원하고 위로하는 유전자를 여성이 더 잘 활용하기 때문일까.

지금 ‘공감의 시대’를 읽고 있는데 남녀의 공감능력 차이를 사뿐히 넘어서는 동물의 공감능력에 관한 수많은 실험이 펼쳐지고 있다. 책을 번역하신 최재천 선생님이 역자서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공감 능력은 길러지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것이다’ 많은 동물들의 공감 실험에 울컥할때가 엄청 많다. 흑백이 아닌 너른 회색지대를 제안하는 생물학자의 글에서 마음이 넓어지고 있다.

아, 이 책은 ‘뿌리’모임에 생물학 전공자가 들어오면서 추천했기 때문에 읽고 있다. 모임이라고 해봤자 잘 모르는 세 사람이 2주에 한번 모여서 책 한 권 정해서 읽고 지구를 위한 실천을 도모하는 것이다. (지금은 손수건 사용 습관 기르는 중이다) 멤버는 어떤 잡지에서 “배우는 사람. 여성인권, 동물권, 환경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라는 소개를 보고 다짜고짜 만나자고 한 친구, 독서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자기 동생이 나랑 잘 맞을 것 같다고 해서 연락하게 된 친구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이다. 다음 책은 ‘수목인간’이라는 절판된 책인데 도서관에서 빌려야 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잡지에서 언급된 책이라 이야기 꺼냈더니 다들 엄청 좋아하고 심지어 각자 몇 권 씩 과월호를 구입해서 나눠 읽기로 했다. 너무 두꺼워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인류세의 모험’을 밀리의
서재 앱(e book app) 한 달 무료 체험으로 읽고 있는데 이것도 보통 재밌는게 아니다. (밀리의 서재도 모임에서 알게 되었지. 정보공유의 효과가 큰 모임이 되고 있다 ㅋㅋ)

오늘은 두 시간 반 걸려서 울산 갔다가 노래 두 곡 부르고 두 시간 반 걸려서 집에 왔다.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영어 동아리 친구들과 영어책을 소개하고 영어 노래를 부르는 무대를 준비하셔서 응원 겸 축하 공연을 하러 다녀온 것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요즘 고등학생들과 다르게 굉장히 적극적으로 책을 프리젠테이션하고 목청 높여 노래를 불렀다. 관객이 되어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책도 아이들도 인상적이었지만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하니 선생님이 계속 기억난다. 나중에 끝나고 같이 식사하는데 아이 하나하나 복기하면서 이야기했더니 팔불출처럼 한 아이 한 아이 자랑하는 얼굴이 그야말로 사랑이었다. 지난번 동네 여자 고등학교 공연갔을때도 아이들에게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 주고 싶어서 일 크게 벌이신 훌륭한 여자 선생님이 계셨더랬지. 오늘도 울산에서 유사한 훌륭한 여자 선생님을 만났다. 부정적인 것들이 넘치는 세상, 곧 멸망할 것 같은 환경파괴 속에서도 다시 사람을 통해 감탄하게
된다. 그것이 희망이길 바라본다.

어제는 갑작스러운 한 청년의 죽음을 듣게 되었다. 친하지는 않아도 늘 응원하는 마음이 되는 선하고 꿈 많은 친구였는데 이렇게 빨리 떠나게 될 줄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그를 잃은 친한 친구들, 그리고 정말 최고의 관계를 자랑하던 직장 동료들의 상실감이 걱정되었다. 오늘 소개받은 영어책 중에 ‘리버보이’라는 책이 오늘 나에게 조금의 위로가 되었다. 할아버지와 이별하는 손자의 이야기인데 한 친구가 이런 구절을 읽어주었다.


죽음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손자에게 리버보이는 삶도 역시 아름답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어쩌면 더욱 우리 지구 위 생물에게 위로가, 공감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