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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19

20190822 목요일 ‘다름을 채우는 대화’

올 여름은 더위보다 습도가 무섭다. 집의 반 정도가 빛을 못 받는 구조라 곰팡이 습격을 가끔 받았는데 이번 여름에 집을 많이 비워서 큰일날 뻔 했지만 소담님 계셔서 잘 넘어갈 수 있었다. 어제 밤부터 무서운 비가 내리고 다시 습해졌는데 이걸 가을장마라고 부른다고 하네. 더워서 땀이 나는 건지 습기를 빨아들이는 건지 구분이 안가지만 아무튼 많이 걸어서 축축한 상태로 집에 들어와서 맥주캔을 땄다.

오늘은 오랜만에 사이숨 정기모임이 있었다. 우리가 모여서 주로 하는 일은 근황 토크지만 하다보면 뭔가 방향이 잡히고 할 일이 생각나기도 한다. 문구점 아저씨가 사이숨에 들어오면서 분위기 전환이 확실히 되고 있다. 문구점 일이 바빠서 기운이 쪽쪽 빠지고 계신 느낌도 들지만 ​점점 더 협업의 가능성이 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부산의 청년단체들 네트워크 맵을 만든다는 설문이 들어와서 모인 김에 입을 모아 사이숨을 정리해보았다. 질문 중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해결할 문제를 단어로 정리해보는 거였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협업’과 ‘창작자의 생계’로 정리할 수 있었다.

나는 협업이 좋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라서... 그리고 이제는 내가 바보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수다떨고 할 일을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고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고 땀흘리며 집까지 걸어왔다.

소담 님과 걸으면서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려는 대화가 아닌, 우리가 얼마나 다른가를 인정하고 서로 알아가려는 대화 말이다. 어쩐일인지 우리는 그런 대화를 배우고 자라지 못한 것 같다. 옳음을 증명해야하고 경쟁에 내몰린 우리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게다가 세상의 일들이 옳고 그름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대화의 가능성이 줄어든다. (당연히 그렇게 세계를 인식해왔고 따라서 내가 맞거나 틀렸다는 두 가지 판단으로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서로를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대화로 그 틈을 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쉽지 않다. 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