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피로는 상당했다. 아침에 끝없이 바닥으로 하강하는 느낌으로 잠에서 깼다. 엄마랑 여행가기로 해서 치과 치료를 마친 엄마를 만나서 점심을 먹고, 은수언니가 만들어 준 맛있는 팥빙수를 먹고, 7번 국도를 향해 출발했다. 그게 엄마와 내가 정한 유일한 계획이었는데 유노왓, 오늘 7번 국도에는 올라서지도 못함 ㅋㅋㅋ 조금 가다가 저기 기웃 또 가다가 길 잘 못 들어서 돌다가 웃다가 커피도 마셨다가 바다 사진도 찍었다가 하다보니 경주 문무대왕릉 근처에 펜션 잡아서 들어왔다. 저녁은 펜션 주인 추천 식당에서 맛있는 물회를 먹었다. 엄마가 ‘달이 안보이네요’ 하니까 식당 아주머니가 ‘가만보자 오늘이 열엿새니까 달이 클텐데 구름때문인가’ 한다. 이어 엄마는 ‘어제 여기도 비 많이 왔나요?’ 하니까 ‘여기는 문무대왕님이 지켜줘서 괜찮아요’ 하셨다. 우선 스리슬쩍 말 거는 엄마의 스킬에 놀랐다. 이렇게 사회성 있는 사람인 줄 몰랐단 말이다. 식당 아주머니가 음력을 항상 기억하고 사는 사람인것도 신기했다. 엄마는 바다 사람들에게는 음력이 엄청 중요할거라고 했다. 식당은 정말로 문무대왕릉 바위가 보이는 곳에 있었고, 아주머니는 정말로 문무대왕의 보살핌을 확신하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재밌군 재밌어.
지금 엄마는 코골고 자고 있는데 좀전까지 나눈 대화에 눈물을 콸콸 쏟았다. 엄마와 절친인 ㅈ아주머니가 계신데 어떻게 친해졌냐는 질문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98년쯤 보증 문제로 갑자기 지낼 곳이 없어진 ㅈ아주머니의 사연을 들은 엄마는 기도중에 자꾸 마음이 움직여서 자기가 원래 가난하게 살아와서 돈 함부로 쓰는 사람 아닌데도 보험회사에서 오백만원을 빌려서 집 구하는데 쓰라고 했단다. 그리고 나중에 형편이 되면 갚는다 하더라도 돈 받은 걸 잊은듯이 살라고 말했단다. 이후에 우리집 형편이 안좋아졌던 09년에 엄마는 혹시 돈을 갚을 수 있겠냐 물어서 그 돈을 돌려 받았다고 한다. 돈 보다 마음이 오가던 그 시절동안 두 사람은 절친이 되어 2019년인 아직도 깊은 우정을 유지하고 계시다. 얘기 끝에 엄마는 자기가 친구를 깊이 사귀지 못할 성격이어서 하나님이 친구를 만들어 준 기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늘 엄마의 동물점을 보았는데 부엉이가 나왔다. 어릴때 부엉이상었다고 깜짝 놀란 엄마... hard working으로 시작하는 첫 문장에 더 놀람. ㅋ 그리고 너무 목표 지향적이고 완벽주의라서 주위 사람들 질리게 하는 스타일이었...)
그것 말고도 보통은 절약정신 투철해서 인색한 엄마가 측은지심이 느껴질 때는 또 행동력이 엄청나지만 뭔가 주는 게 어색해서 문 앞에 쌀 한 가마니 두고 온 거, 병문안 혼자 가서 베개 밑에 병원비 두고 온 이야기, 가난한 청년 졸업식때 양복 사 입으라고 봉투에 돈 주고는 또 받은 거 잊어버리라는 츤데레 메시지 남긴 이야기 (오늘 한꺼번에 들은 건 아니고 기억 속 이야기들 모아둔 것임) 듣다 보면 언제나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오늘은 내가 어딜 가나 환영받고 사랑받는 이유가 엄마가 쌓은 덕 덕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일은 꼭 7번 국도 달리고 엄마 이야기 더 많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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