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걸려온 모닝콜에 하루를 시작했다. 일기에 징징거렸더니 서귤님이 친히 안부를 물어 주신 것이었다. 뉴욕 너무 좋은데 하루밖에 안남았다고 아쉬워하셨다. 누구도 이방인이 아닐 수 있는 분위기가 새롭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느낌이라 (심지어 고국에서도) 궁금한 마음이 든다. (서귤님 고맙습니다! 😘)
밥 챙겨 먹고 기타 챙겨서 길을 나선다. 꽤 긴 길이고 나는 빅티를 생각했다. 왜냐하면 오늘 가는 복지관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얼마전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갑자기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함께 있어야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다. 나는 그 친구의 상사인 과장님을 참 좋아한다. 두 사람의 관계도 다른 어딘가에서 본 적 없는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의 관계여서 언제나 신기하고 흐뭇하게 바라봐왔다. 부고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과장님 걱정이 되었지만 전화를 걸기가 어려웠다. 오늘 다른 행사로 그곳에 가야했고 어제야 용기내어 전화를 걸었고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짧게 나누고 내일 보자는 인사를 했다. 상실한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전에 드리기로 했던 ‘경찰관속으로’를 이제야 드렸다. 쓸 데 없이 내가 더 울었다. 눈물은 다 자기 이유로 흐르는 것이겠지.
순수한 웃음과 순수한 울음이 오갔다. 그래서 그냥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자고 했다. 그리고 떠난 이는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다고 나를 위로했던 술라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위로의 노래라고 간혹 이야기를 듣지만 나는 위로할 자격이 있는가 항상 의심한다. 위로를 목적으로 노래를 만들지는 않았다. 내 솔직한 이야기, 혹은 바람들이 누군가에게 공명해서 온 위로일 뿐이겠지. 눈물이 자기 이유로 흐르는 것과 같이.
3회차로 어디론가 찾아가서 시 써보고 노래 부르는 행사가 끝났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린이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시를 엿볼 수 있어서 늘 즐거웠다. 이 행사를 준비한 기획팀 친구들이 참 좋아서 끝이라는 게 아쉬웠다. 오늘은 그래서 처음으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들은 바쁘게 다음 일정을 하러 갔고 나는 그 팀의 수혜를 받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차타고 나오게 되었다. 우리는 진심으로 배려받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단체라고 입모아 칭찬했다. 그리고 각자 자리에서 나름의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방황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는 거기서 더 위로를 받게 되었다. 한 분은 사운드 엔지니어인데 한 길만 파는 길을 가야 할지, 영상까지 함께 겸하는 길을 가야 할 지 고민이라고 했다. 다른 한 분은 사회복지사로 대학시절부터 봉사활동을 해 오던 장애인 단체에서 젊음과 열정을 쏟아 일하시다가 건강 문제로 휴직하고 다음 길을 모색중이라고 하셨다. 나도 늘 경계선에서 돈 걱정하며 다음길을 모색하며 살고 있다고 하면서 서로 짧은 자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갑자기 나눈 토크에 뭔가 모를 안심이 생겼다.
그리고 갑자기 아이키도(합기도) 도장에 들렀다. 요즘의 방황을 무도 수련으로 한번 극복해볼까 싶어서 어제 폭풍 검색했더니 부산에 세 군데밖에 없는데 우리 동네에 하나 있는 게 아닌가. 데스티니~ 하면서 한 번 들러 보았더니 동네에 있는 어린이 태권도 도장같은 분위기였다.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 글에서 꾸준히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봐왔던 합기도. 무엇일까. 할 수 있을까. 하면 중심을 좀 잡을 수 있을까. 사부님은 나에게 걸어보라고 했고 걸었더니 턱부터 골반까지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걷는다며 긴장이 잔뜩 되어있다고 했다. 그럴땐 구르기지! 하시는데 갑자기 막 구르고 싶고... 아직 시작할 지 말지 결심은 안섰다. 근데 아침에 서귤님한테 아이키도 하러 갈꺼라고 했더니 이내 운동 2년 주기설을 제시했다. 과연 2년 전 갑자기 수영과 복싱에 빠져들었던 그때가 떠오른다. 뭐 하나 빠지면 한동안 엄청 빠져드는 스타일이었구나. 몰랐는데. ㅋㅋ 그런데 그것보다 서귤님이 나의 변화과정을 꽤 오래 지켜봐 준 친구가 되었다는 게 갑자기 기뻤다.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전환점으로 운동 괜찮지 않을까? 요즘 이후북스에는 요가바람 솔솔 불어와서 보기 좋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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