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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19

20190918 수요일 ‘사이숨 글쓰기 재탕일기’

생각을 붙잡을 수가 없다. 둥둥 떠 다닌다. 요즘은 길을 잃은 기분에 자주 빠진다. 요즘 챙겨보는 드라마 속 드라마 제목이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다. 물론 서른 돼도 괜찮지 않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실상은 마흔 되어도 괜찮아지지 않는다. 괜찮지 않다는 것은 아직도 변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보통은 이런 말들로 나를 제자리로 데려다 놓으려 애쓰는 스타일이다. 어릴 때 하도 이것저것 내팽겨치고 도망다니길 자주 해서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어떻게든 견뎌야 하고 어떻게든 지나간다. 지나고 보면 지날 때의 감정은 훗, 하고 웃어버릴 정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는 그 순간에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안다는 게 그러나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모두가 행복을 전시하고 있었던 연트럴파크를 걸으며 쓸쓸하게 홀로 지나는 연휴 끝에서 나는 사무치게 외로웠다. (그래서 혼자 치맥하고, 그래서 비건이 되자 결심했던 자신을 더욱 미워하기도 했다지) 한편으로는 그 그림같았던, 그래서 외로웠던 산책의 끝에는 굉장히 멋진 카페가 있었다.



보틀 팩토리. 너르고 멋진 공간 안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한 달에 한 번 제로웨이스트 마켓을 이어가고 있다. 이름은 ‘채우장’. 부정적으로 만들지 않고(노 플라스틱 뭐 이런 방식이 많으니까) 긍정적인 방향의 작명이 마음에 든다. ‘유어보틀위크’라는 행사도 9월 말에 열리는데 라인업이 화려하다. 강연, 공연, 상영, 워크숍 알차게 준비되어 있다. 부산에 사는 나는 침을 흘리며 구경만 하는 게 아쉬워서 텀블벅 후원을 했다. 부럽고 뭐라도 하고 싶어진다. 아직 변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있다는 점에서 안심 한 번 하고 힘을 내 보려고 한다.



요즘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노래고 글이고 다 떠나고 싶고, 평범하게 직장생활 하면서 소시민적으로 사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하다보면 진짜로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늦어서 다행이기도 하고. 결국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밖에 없다. 멋있지 않아도, 완성도가 누구누구랑 비교해서 모자라도, 어디 다른데 가서 새로 시작할 수 없다. 그런 의미로 사이숨을 비롯한 이런 저런 커뮤니티를 만들어 두길 잘했다. 과거의 내가 저지른 일이 나의 오늘을 토닥여주니까. 그나저나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의 신간에서는 소시민과 반대되는 개념의 ‘대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미 좋아해버린 선생님의 글이 소시민의 꿈을 살짝 내려놓게 한다. 살면 살 수록 이전의 내가 나에게 끼치는 영향을 더 느끼게 된다. 그런 면에서 ‘마흔 되면 괜찮아져요’ 라고 할 여지가 조금은 생겼다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