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전에 집에 들어왔다. 엄청 쿵쾅거리면서. 평소 나는 늘 조심스럽게 조용히 움직이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소주를 마시고 들어와서 좀 시끄러웠다. 예전에 영국에서 데낄라 엄청 마시고 집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하우스메이트가 집에서 어떤 년이 저렇게 시끄럽게 들어오나 했는데 자기집 문이 열리면서 내가 들어왔다고 했다. 두고두고 웃음거리였는데. 오늘은 무전여행에서 돌아온 동재쌤이 갑자기 회 먹고 싶다고 해서 은수언니 동재쌤 부부에 끼어서 회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소맥도 마시고 소주도 마셨다. 막판에 둘이 싸워서 나름 열심히 중재를 했다. 옛날에 소혜가 두 사람이 자기랑 있을때만 싸우는 거 같다고 그랬는데 아닌걸로. ㅋㅋ 내일은 엄마 아빠 중재하러 가야되는데 왠지 부모님이 두 세트 있는 기분이다. 사실 두 분은 가까이에 사는 이웃처자인 나를 엄청 아껴준다. 우리동네가 산과 공원과 도서관이 있어서 참 좋지만 이 부부가 없다면 그리 좋지는 않을 것도 같다.
도서관에 갔다. 지난번에 빌린 영어교습법 책에서 필요한 부분만 복사를 하고 반납했다. 지하 매점에서 복사카드를 사서 3층까지 올라가 복사를 하는데 뭔가 추억에 잠겼다. 대학생때 생각이 났다. 대학을 다녔나 싶을 정도로 아득한데 유사한 행동이 기억을 끌어냈다. 복사해서 그 자료를 제대로 활용한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열심히 복사기를 돌린 기억이 난다. 오늘은 뭔가 회사원이 된 기분도 들고 재밌었다. 어린이 도서실에는 영어 동화책이 많이 있었다. 다음주 수업에 쓸 몇 권을 빌려 나왔다. 그리고는 덕천동에 있는 소극장624에 연극보러 갔다. 그 동네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구포시장이 있다. 연극보러 갈때는 다들 뭔가 선물을 준비한다. 음료수나 간식거리가 많았던 것 같다. 작년 이맘때쯤 연극에 음악으로 참여해서 알게된 것이다. 시장에서 건어물가게를 발견해서 자색 고구마 말린거랑 견과류 묶음을 사서 극단에 드렸다. 체질식 할때 많이 먹던 말린 문어도 나를 위해 한묶음 구입했다. 연극은 언제나 낯설다. 나는 어릴때 연극배우가 꿈이었던 적도 있다. 연극배우라기 보다는 무대 끄트머리에라도 한 번 서 보고 싶다가 꿈이었는데 대학때 이루었다. 심지어 주연이었다지. (엄마의 추억이라는 연극에서 엄마였다. ㅋ) 그 이후에는 연극 스텝도 한 번 해봤다. 연극의 스텝들끼리 친해져서 나중에 그 멤버로 영화동아리가 꾸려졌고 그때 만난 사람들이 내 인생에 엄청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무튼 무대의 꿈을 이룬 후로 더 이상 연극에 욕심은 없어졌는데 재미도 함께 없어졌다. 연극은 하는 사람만 재미있는 장르같은 느낌이다.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게 많은 세상에서 연극 무대를 찬찬히 보고 있는 것은 실은 고역일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연극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 무대에 서는 즐거움을 느껴보는 게 사람들 건강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요즘 내가 가장 애정하는 편의점 음식은 참치마요네즈 삼각김밥과 파인애플이다. 주먹만한 플라스틱통에 파인애플 주스와 파인애플 조각이 담겨있다. 파인애플도 나의 체질에 맞는 과일 중 하나이다. (키위 레몬 청포도와 함께) 그 조합이 꽤 맘에 들어서 급하게 허기질 때 당분간 잘 활용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자꾸 쓰레기가 마음에 걸린다. 뭘 하나 사도 내용물보다 쓰레기가 더 많은 것 같다. 시장에서 장보면 좀 덜한데 슈퍼나 마트나 편의점에서 사는 물건들은 포장이 너무 과하다. 플라스틱 스티로폴 비닐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렇게 쓰레기를 만들어내다가 지구가 쓰레기로 가득 차게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부엌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돌아보니 다 쓰레기다. 조금 더 신경을 쓰면서 살아야 겠다. 좋은 습관은 만들기는 어려운데 깨지기는 엄청 쉽다. 손수건과 텀블러 가지고 다니는 것도 매년 새해 계획인데 번거로워서 잘 안지키게 되고. 그래도 내년 계획에도 아마 들어가게 될거다. 내 주위에는 그런것들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 친구들이 나침반이 되어 방향을 잡아주고 있다.
아 맞다. 어제 밤에 일기쓸때 맥주 마시면서 프라이팬에 빵을 좀 구웠었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잠깐 잠들었다가 깼는데 가스렌지에 불이 계속 켜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짜 깜짝 놀랐다. 계속 잤으면 집이 홀랑 다 타버릴 뻔 했다. 아아 십년감수했다. 오늘 도서관에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을 빌려서 공연보러 가는 지하철에서 조금 읽었다. 엄청 재밌었다. 요즘 소설에 흥미를 완전히 잃었었는데 재미있는 소설을 발견해서 다행이다. 돌이켜보면 문학이 나를 키웠는데 조금 컸다고 사람이 이렇게 변한다. 소혜를 통해 알게 되었던 도스트예프스키,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주었던 마르케스, 시험기간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태백산맥과 한강, (토지를 아직 다 못읽어서 시험기간이 필요한가 싶네 ㅎ), 어린시절 어른처럼 보이려고 읽었던 한국소설들, (부코우스키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미국소설들, (이상하게 영국소설도 잘 안읽혔다) 삶이 가득해서 언제나 재미있었던 중국소설들,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동유럽 소설들, 다채로움을 자랑하는 일본소설들. 이렇게 쓰고 보면 엄청 다독가 같지만 실은 다 찔끔 읽고 아는척 하는거다. 나는야 조금 알고 많이 아는척 하는거 잘하는 사람이니까. 이제 이내책방으로 거듭나기로 했으니 드라마 보는 것 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싶다. 많이 읽고 많이 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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